엄마는 내게 찐빵이 든 투박한 봉지를 내밀며 말씀하셨다. “이거 니 아버지 갖다 드리고 오너라.” 봉지를 받아든 순간, 그 안에서 풍겨 나오는 달콤하고 따끈한 찐빵 냄새에 나는 저절로 군침을 삼켰다.
우리 집 바로 앞에는 언제나 뜨끈한 찐빵을 쪄내는 기순이네 빵집이 있었다. 하지만 60년대, 보리밥조차 귀하던 시절에 엄마는 단 한 번도 그 찐빵을 사주신 적이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골목을 가득 채우는 빵 냄새는 어린 내게 참기 힘든 고문과도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김매러 나간 아버지를 위해 엄마가 내 손에 찐빵 봉지를 쥐여주신 것이다. 나는 이 심부름을 하면 빵 몇 개는 얻어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잔뜩 기대하며 아버지가 계신 논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마침 쉬고 계신 아버지께 반가운 마음으로 찐빵 봉지를 펼쳐 놓았다. 시장하셨던지 아버지는 허겁지겁 빵을 드시기 시작했다. 나는 내심 마지막 하나라도 내게 나눠주시길 간절히 기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마치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듯 6개의 찐빵을 그 자리에서 거의 다 비워버리셨다.
순간, 열 살짜리 어린 마음속에 서운함과 함께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나는 울음을 억지로 참았다. 새벽부터 논으로 나가 고된 노동을 견딘 아버지께 그 찐빵이 유일한 점심 식사라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가 얼마나 고프셨으면 눈앞의 딸을 보지 못하셨을까. 아버지 역시 마음속으로는 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으로 울었다. 아버지가 겪어내야 했던 고단한 삶의 무게와 궁핍함, 그리고 철없는 기대에 부풀었던 내 모습이 겹쳐져 마음이 쓰라렸다. 당시의 아이들은 부모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집안 사정을 다 알았다. 오히려 부모님 걱정하실까 봐 일찍 철이 들어, 먹고 싶은 것도 스스로 포기하며 자라났다.

어른이 된 지금, 찐빵을 볼 때마다 허겁지겁 드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 한편이 아릿해진다. 철없던 딸의 눈치 없는 투정이 부끄럽고, 동시에 그 시대의 비정한 가난이 야속하다. 이제는 잊힐 때도 되었건만, 기억은 갈수록 생생해진다. 아마도 그것은 아버지의 고단했던 뒷모습과, 그때 비로소 ‘어른’이 되어버린 어린 나의 아픈 성장이 주마등처럼 스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분에게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마음 아픈 음식에 대한 추억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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