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시작이라 불리는 아담의 이야기는 늘 우리 마음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완벽한 환경 속에서 창조주와 매일 동행하던 그들이 왜 단 하나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까요? 이 아픈 사건은 수천 년 전 한 사람의 실수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던져지는 묵직한 질문이지요.
“우리는 정말 그분을 사랑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분이 주시는 환경과 축복만을 의지하는 걸까요?”
하지만 성경이 이 사건을 기록한 이유는 우리를 다그치거나 정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눈앞의 유혹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가’를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1. 왜 그런 약속을 만드셨을까요?
가장 큰 의문은 이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선악과를 두셨을까?”
저 역시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반려동물을 지켜보며 문득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주인이 “기다려”라고 말할 때, 강아지는 단순히 힘에 눌려 억지로 멈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을 향한 전적인 신뢰, 그 믿음 때문에 스스로 자리를 지키며 인내하는 것이죠. 그 자발적인 순종을 볼 때 주인은 비로소 깊은 사랑의 기쁨을 느낍니다.
사랑은 결코 강요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순종하는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라는 고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선악과는 단순히 열매를 먹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창조주를 진정으로 신뢰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사랑의 증명’**이었던 셈입니다.

2. 실패한 우리를 찾아오시는 발걸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약속 앞에서 매번 실패합니다. 스스로 높아지려 하고, 내 뜻을 더 앞세우며 소중한 신뢰를 저버리곤 합니다. 아담이 부끄러움에 나무 뒤로 숨었을 때처럼, 우리도 실수한 뒤엔 그분 앞을 피하고 싶어 하지요.
그러나 성경의 진짜 이야기는 우리의 실패가 아닙니다. 숨어버린 우리를 먼저 찾아와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다정하게 물으시는 그분의 사랑입니다. 심판보다 앞선 그분의 발걸음은 언제나 ‘찾아감’에 있었고, 부끄러워 떠는 우리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 그 애틋함이 결국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됩니다.
3. 오늘, 우리 인생의 동산에서
오늘도 우리는 삶의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고민합니다. 내 생각을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그분을 신뢰할 것인가.
비록 우리의 자유의지는 연약하여 자주 넘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그분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내 인생의 동산에서 주님을 향한 나의 신뢰가, 그 어떤 화려한 성취보다 더 아름답게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나의 이 작은 자유가, 당신께 드리는 가장 순수한 사랑의 고백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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