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당 한구석이나 동네 아름드리나무 밑에는 으레 나이 든 평상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날이 따스해지면 동네의 모든 일상은 그 네모난 나무 침대 위로 모여들곤 했습니다.
평상은 온 동네 사람들을 품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거실이었습니다.
아침이면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다듬던 파란 나물 줄기가 놓였고, 한낮의 뙤약볕 아래에서는 농사일에 지친 아버지가 밀짚모자를 벗어 얹어두고 달디단 낮잠을 청하던 쉼터였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가방을 팽개치고 올라앉아 서투른 공기놀이를 하던 놀이터이기도 했습니다.
누구도 평상에 자리를 예약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온 사람이 앉아 있으면 나중에 온 사람은 옆에 슬쩍 엉덩이를 걸치면 그만이었습니다.
말이 많으면 많은 대로,
말이 없으면 없는 대로 괜찮았습니다.
누군가는 나물 다듬는 손을 쉬지 않았고,
누군가는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세워 동네 소식을 전했고,
누군가는 그저 앉아 하늘만 바라보다 돌아갔습니다.
평상은 누구에게도
“무슨 일을 하러 왔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오면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지요.
요즘 우리의 거실에는 푹신한 소파도 있고, 좋은 의자도 있지만
그 옛날 평상처럼 아무나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집을 방문하기 전에 약속을 하고,
만나서도 바쁘다는 말을 먼저 합니다.
그런데 옛날 평상에는

사람이 사람 곁에 머무를 시간이 있었습니다.
해가 기울면 평상 위로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어른들의 이야기가 잦아들 무렵이면 아이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고 나면 하루 종일 사람들의 온기를 받아낸 평상만이
말없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문득 그 평상을 떠올리며
주님을 생각합니다.
주님도 그런 평상 같은 분이 아니셨을까.
지친 사람이 오면 쉬어갈 자리를 내어주시고,
슬픈 사람이 오면 말없이 곁을 내어주시고,
잘난 사람이나 부족한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그 품 안에 머물게 하시는 분.
우리는 때때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도
괜찮은 모습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잘해야 할 것 같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 같고,
마음속에 부끄러운 것이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옛날 평상은
깨끗하게 씻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람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농사일로 땀에 젖은 사람도,
흙 묻은 아이도,
마음이 무거운 사람도
그저 와서 앉으면 되었습니다.
어쩌면 주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잘하고 오려 하지 말고,
그냥 내게 와서 앉아 있으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날에는
그저 주님 곁에 앉아 있어도 되고,
눈물이 나는 날에는
눈물만 흘리다 가도 되고,
기도조차 나오지 않는 날에는
“주님…” 그 한마디만 남겨놓고 가도 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자리.
어린 시절 마당 한구석에 놓여 있던 낡은 평상은
이제 어디에도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 그 평상이 내어주었던 자리는
아직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조용히 생각합니다.
사람이 지쳐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가.
세상이 아무리 바쁘게 돌아가도
잠시 내려놓고 앉을 수 있는 자리 하나.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잘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주님은 오늘도 그런 평상을 우리 앞에 놓아두고
말없이 기다리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요.
“어서 오너라.
여기 앉아 쉬어라.”
그 옛날 평상처럼
말없이, 넉넉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