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이 출출해질 무렵, 고요한 동네를 깨우는 정겨운 외침이 들려온다.
“도토리 묵 사이소~”
신문을 보던 아버지, 바느질하던 어머니.
성미 급한 큰언니가 그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다.
“엄마, 우리 묵 사 먹자.”
엄마는 말이 없다. 그저 애꿎은 떨어진 양말을 동그란 전구 위에 씌우고 바늘을 부지런히 놀릴 뿐이다.
우리 7남매의 시선은 엄마와 언니 사이를 번갈아 오간다. 60년대의 가난은 묵 한 모 사 먹는 일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린 우리조차 본능적으로 직시하고 있었다.
엄마의 묵묵한 침묵 속에 아이들은 침만 꼴깍 삼킨다. 신문을 보던 아버지도 슬그머니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기신다.
학교 월사금조차 내기 버거웠던 형편에, 도토리묵이라니. 기대에 찼던 아이들의 눈망울은 이내 실망에 젖어, 빈 뱃속을 달래며 잠자리로 숨어들었다.
요즘 산짐승들이 민가로 내려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는 뉴스를 본다.
왜일까. 숲에 먹이가 없기 때문이다. 도토리는 본래 산짐승들의 귀한 식량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마저도 욕심내어 가져와 버렸다.
사람들은 제 먹거리도 모자라 동물의 양식까지 빼앗았고, 갈 곳 잃은 짐승들은 결국 사람의 거처까지 밀려 내려온 것이다.
예전에는 가난해서 도토리묵을 먹지 못했지만, 이제는 동물의 먹이를 뺏고 싶지 않아 묵을 멀리한다.

자연은 귀하다. 동물들은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이 살아야 인간도 살아갈 길이 열린다. 사람의 편리를 위해 산을 깎아 도로를 내면서, 산짐승들의 길이 사라졌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먹이도, 자연도, 공존의 가치도 무너지고 있다.
한도 끝도 없는 인간의 욕심은 대체 어디서 멈출 수 있을까.
예전에는 가난해서 도토리묵을 먹지 못했다.
이제는 동물의 먹이를 빼앗고 싶지 않아 스스로 묵을 멀리한다.
세월은 흘렀지만,
사람의 욕심은 더 커진 것만 같다.
오늘 밤,
묵묵히 양말을 꿰매시던 어머니의 손끝과
먹이를 찾아 산을 내려오는 짐승들의 발자국이
자꾸만 내 마음속에서 하나로 겹쳐진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