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남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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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거울을 참 오래 들여다보곤 했다.

거울 속에는 왠지 또 다른 세상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손을 뻗으면 거울 속 아이도 똑같이 손을 뻗고, 내가 슬픈 표정을 지으면 함께 울어줄 것 같은 친구가 그곳에 살고 있을 것이라 순수하게 믿었던 시절이었다.

세월은 참 속도도 없이 흘렀다.

거울 속에는 호기심 가득하던 어린아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고, 수줍음과 풋풋함이 전부였던 사춘기 소녀의 시간도 머물다 갔다.

기쁨으로 반짝이던 날들과 남몰래 흘렸던 눈물로 얼룩진 시간들도 차례로 거울의 눈을 거쳐 갔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바라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가에 자리 잡은 잔주름,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 예전 같지 않은 얼굴의 선들.

젊었을 때라면 애써 외면했을 흔적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흔적들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저 주름 하나에는 웃었던 날들이 있었고,

또 다른 주름에는 마음 아파 울었던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했던 날도 있었고,

상처를 받고도 다시 일어났던 날도 있었다.

아이들을 걱정하며 밤을 지새운 날도 있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고를 묵묵히 견뎌낸 날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에 남은 것은 단순한 주름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젊고 아름다운 얼굴을 좋은 얼굴이라고 말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사람의 진짜 얼굴은 태어날 때부터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날들이 조금씩 빚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이 웃은 사람에게는 웃음의 흔적이 남고,

많이 사랑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눈빛이 남는다.

많은 것을 견뎌낸 사람에게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가 생기고,

아픔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얼굴에서 아름다움이 하나씩 사라지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이

조금씩 얼굴 밖으로 드러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 나는 거울 속에 또 다른 아이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다시 거울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고, 그 아이를 지나온 수많은 날들이 함께 서 있다.

문득 알 것 같다.

거울은 얼굴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그 얼굴을 만들어 온 삶까지 비추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는 거울 앞에서

주름을 지우려고만 하지 않으려 한다.

그 주름 하나하나가

내가 살아냈다는 증거일 테니까.

오늘도 거울 속의 나에게 가만히 미소를 지어본다.

어릴 적 거울 속 친구에게 그러했듯이.

“참 오래도 함께 살았구나.”

그리고 생각한다.

지금 거울 속에 있는 이 얼굴도

언젠가는 지나간 한 시절의 얼굴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남은 날들도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정직하게 살아야겠다.

훗날 다시 거울을 바라보았을 때

그곳에 비친 얼굴이

내가 살아온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얼굴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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