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저는 꽤 까다로운 성가대 지휘자였습니다.
성가대원들의 작은 음정 하나, 미세한 박자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틀린 음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했고, 흐트러진 박자는 정확하게 맞추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믿었습니다.
연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제 머릿속에는 아름다운 화음보다 대원들이 실수했던 장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조금만 더 정확했더라면…’
‘한 번만 더 맞추었더라면…’
언제나 제 관심은 더 완벽한 찬양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가대 연습을 인도하던 중 제 마음에 질문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지휘하고 있는가?’
그 질문은 제 마음을 깊이 흔들었습니다.

혹시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평가를 더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찬양의 본질보다 음악적인 완성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질문은 오랫동안 제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성가대는 「사명」이라는 찬양을 연습하게 되었습니다.
지휘를 하며 가사를 따라가던 중 한 구절에서 제 손이 멈추었습니다.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그 순간 그 가사는 더 이상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직접 들려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살리시기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셨는데,
나는 대원들이 음정을 틀렸다는 이유로 쉽게 실망하고,
박자가 흔들렸다는 이유로 마음을 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작 삶에 지쳐 힘겹게 예배당에 나온 대원들의 마음은 한 번도 깊이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지휘자가 가장 먼저 맞추어야 하는 것은 음정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후 제 지휘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정확한 음정과 박자는 중요합니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예배자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찬양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기 위한 음악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완벽한 화음이라도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저는 지휘대에 서면 먼저 지휘봉보다 대원들의 눈을 바라봅니다.

삶에 지친 사람은 없는지,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기도가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부족한 화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조금 흔들리는 음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품는 사랑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찬양을 가장 아름답게 받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성가대는 완벽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함께 예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기도합니다.
우리의 찬양이 사람의 귀를 만족시키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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