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가장 지키기 힘든 주님의 말씀 중 하나는 단연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일 것입니다.
살다 보면 내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가빠오는 속상한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입술로 범죄하지 않고 상대를 용서하려 애쓰지만, 밀려오는 인간적인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당대의 의인이자 하나님 마음에 합했던 다윗조차도 시편 속에서 원수들을 향해 거침없는 저주를 쏟아내는 장면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시편 69:27-28)
이토록 독한 탄식을 읽을 때면 문득
‘우리도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다윗처럼 원망 섞인 기도를 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정직한 의문이 고개를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편을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보면, 다윗에게서 한 가지 중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은 자기 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하나님께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괜찮은 척하지 않았습니다.
상처받지 않은 사람처럼 아름다운 말만 골라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했고, 두려우면 두렵다고 했으며, 원수가 미우면 그 마음까지 하나님 앞에 그대로 쏟아놓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첫 번째 기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저는 저 사람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용서하라는 말씀을 너무 빨리 실천하려 합니다.
그래서 아직 아픈 마음을 억지로 눌러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다 용서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상처가 피를 흘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용서가 아니라 상처를 덮어놓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미워할 감정조차 느끼지 말라는 명령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미움과 분노를 품은 채로도 그 마음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라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주님, 저는 저 사람을 미워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제 힘으로는 안 됩니다.
제 마음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하나님께 맡기다 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을 생각해도 예전처럼 가슴이 뛰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날도 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내 마음의 힘으로 원수를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의 미움을 조금씩 덜어내시도록 맡겨드리는 일이었다는 것을.
다윗도 처음부터 완전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도 분노가 있었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하나님께 가져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시편의 탄식은 저주의 말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울부짖던 사람이 어느 순간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고,
자신을 붙드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마침내 찬양으로 돌아옵니다.
어쩌면 이것이 기도의 신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도는 내 마음을 하나님께 숨기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을 하나님께 모두 보여드리는 일입니다.
미움까지 보여드리고,
분노까지 보여드리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까지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누군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면
억지로 “나는 사랑해야 해”라고 자신을 다그치기보다 이렇게 기도해 보면 어떨까요.
“주님, 아직 저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주님께서 해주십시오.”
그 기도가 어쩌면
원수를 사랑하는 길의 첫걸음일 것입니다.
작은 씨앗 하나가 땅속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나 싹을 틔우듯이,
우리 마음속의 용서도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겨진 마음에는
분명히 때가 되면 싹이 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명령인 동시에, 가장 깊은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초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