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애굽기 16:3)
애굽에 내리신 열 가지 재앙을 경험하고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을 목격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들어서자마자 또다시 ‘주려 죽게 되었다’며 불만을 터뜨립니다.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음에도 그들이 곧바로 원망했던 것은, 그들이 특별히 악해서라기보다 눈앞의 ‘생존의 위협’이 너무나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려움은 사람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어제의 은혜보다 오늘의 결핍을 먼저 바라보게 합니다.

1. 기적보다 민감한 ‘당장의 빵’
인간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과거)보다 당장 내 손에 들린 빵(현재)에 더 민감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읽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쉽게 판단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통장 잔고나 자녀 문제, 건강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느새 하나님께 받은 은혜보다 눈앞의 현실에 더 사로잡혀 불안해합니다. 기억은 단기적이고 불안은 본능이기에, 어제 받은 큰 은혜도 우리는 아주 쉽게 잊어버리고 눈앞의 현실에 삼켜지곤 합니다.
2. 비판 뒤에 숨은 나의 불안
우리가 타인을 향해 서슴없이 ‘믿음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또한 자신의 불안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일지 모릅니다.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 너무나 두렵기에, 타인을 ‘믿음 없는 사람’으로 규정함으로써 “나는 저 사람보다 낫다”라는 착각 속에서 안도감을 찾는 것이지요. 결국 타인을 비판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도 똑같은 불신과 원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입니다.
3. ‘목이 곧은 백성’, 바로 나 자신
그러므로 ‘목이 곧은 백성’은 멀리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을 보며 “믿음이 없다”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어쩌면 “상황이 조금만 바뀌면 나 역시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라는 나의 본성을 숨기려는 연기일지도 모릅니다.
진정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원망하는 이들을 보며 비판하기보다 이렇게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들의 불안이 곧 나의 불안입니다. 하나님, 그들의 마음을 붙잡아 주시듯 나의 마음도 붙잡아 주시옵소서.”
4. 오늘의 고백
성경을 읽으며 그저 “그들은 믿음이 없었다”라고 결론 내리는 대신, 이렇게 고백해 봅니다.
“성경 속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믿음 없다고 손가락질했던 것은 나의 오만이었습니다. 그들의 원망은 곧 나의 민낯이었고, 우리는 매일 기적을 경험하고도 매일 원망하는 목이 곧은 자들입니다. 선지자를 배척하고 끝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었던 사람들을 보며, 만일 내가 그 시대를 살았다면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임을 고백합니다.
성경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입니다. 그 진실한 고백 위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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