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마중물이라고 하면
깊은 지하수를 마중하러 가는
단순한 한 바가지의 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향 마당의 녹슨 펌프 곁에 서서
바짝 메마른 파이프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마중물조차도 실은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 정성 어린 손길로
한 바가지의 깨끗한 물을 길어
차갑고 메마른 펌프 속으로
힘껏 부어주어야만,
저 깊은 땅속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거대한 물줄기가
비로소 고개를 들고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사방이 꽉 막힌 도심의 가로수처럼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도
이와 닮아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바짝 마른 파이프가
헛된 바람 소리만 토해내듯,
모진 세상의 풍파와
가뭄 같은 시련을 지나오다 보면
우리 안에도 어느 순간
더 이상 아무런 소망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메마른 삶의 틈바구니 속으로
누군가 대가 없이 건네준
진심 어린 한마디,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지켜봐 준
한 번의 기다림,
그리고 지친 마음을
가만히 보듬어 안아주는
따뜻한 눈길 하나가
거친 마음속으로 소리 없이 스며든다면,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것들이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고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마중물은
구하기 어려운 특별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열고
우리의 삶을 가만히 돌아보면,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작은 위로 한마디가 마중물이 되고,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기다림이 마중물이 되고,
따뜻한 눈길 하나가
메마른 마음을 적시는 마중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제야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내 삶에 원래부터
맑은 물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귀한 물을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 줄
따스한 마중물 한 바가지가
잠시 없었던 것뿐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인생의 마당을 지키시며
가장 정확한 때에
마중물을 부어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거센 요동 속에서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살아가며,
나 역시 누군가에게
따뜻한 생명의 마중물이 되어주기를
조용히 다짐해 봅니다.
혹시 오늘
메마른 펌프 곁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건네는 작은 한 바가지가
그 사람 안에 잠들어 있는
생명의 물줄기를 다시 일으키는
마중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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