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한구석에서 낡은 고무신 한 켤레를 발견했습니다.
검은 고무는 오랜 세월을 견디느라 윤기를 잃었고,
발등에는 작은 상처와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오래되어 이제는 버려야 할 신발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한 켤레의 낡은 신발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발걸음이었습니다.
그 신발은 비 오는 날에도 걸었을 것입니다.
눈 내리는 추운 새벽에도 걸었을 것입니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하기 위해 시장을 오가고,
논두렁을 걷고,
때로는 무거운 짐을 지고 골목길을 묵묵히 오갔을 것입니다.
신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오래 걸어 밑창이 닳고,
발등에는 세월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닳아버린 밑창이
내게 조용히 말을 건네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참 많이 걸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몰랐습니다.
왜 아버지의 발이 그렇게 크고 거칠어 보였는지,
왜 신발 밑창이 늘 그렇게 빨리 닳아버렸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가족의 삶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원래 그렇게 무거운 것이었나 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길을 걷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길을 만들어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세월은 아버지를 데려갔지만
그분이 신었던 낡은 고무신은 아직도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네가 지금 걷는 길도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길이 되어야 한다.”
그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살아온 길도 가만히 돌아보게 됩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따뜻한 발자국 하나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혹은 내 앞만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도 그 낡은 고무신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아버지는 이미 떠나셨지만
그분이 남긴 발자국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낡은 고무신 한 켤레에 남겨진 수많은 걸음처럼,
아버지의 사랑도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압니다.
사람은 떠나도 사랑은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랑은 발자국처럼
오늘도 말없이
우리 곁을 함께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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